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더 글로리 (복수극, 학교폭력, 피해자 서사)

by 드라마 방구석 2026. 4. 15.
반응형

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음에 더 글로리를 그냥 유행을 따라 틀었습니다. "복수극이면 어차피 통쾌하게 끝나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요. 그런데 1회를 끝낸 뒤 리모컨을 내려놓지 못했고, 결국 시즌1을 하룻밤에 다 봐버렸습니다. 다음 날 멍하게 앉아서 "이게 단순한 복수극이 맞나?" 싶었습니다. 그 감각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상처와 존엄, 그리고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드라마였습니다. 오늘은 그 깊은 울림과 여운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드라마 주인공이 모두 한자리에 서 있는 사진
드라마 주인공이 모두 한자리에 서 있는 모습

피해자 서사의 복수극 

더 글로리는 2022년 12월 시즌1, 2023년 3월 시즌2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작품입니다. 극본은 김은숙 작가, 연출은 안길호 감독이 맡았고, 송혜교, 임지연, 이도현, 염혜란, 정성일 등이 출연했습니다. 핵심은 피해자 서사(victim narrative)라는 점입니다. 피해자 서사란 사건을 가해자나 제삼자의 시점이 아닌,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시선에서 집요하게 따라가는 서술 방식을 의미합니다. 기존 복수극이 통쾌함을 앞세웠다면, 그보다 먼저 고통의 재현에 공을 들입니다. 문동은이 학교폭력을 당하는 장면들은 자극적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설계되었고, 그 절제가 오히려 더 무겁게 남습니다. 구조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플래시백(flashback)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플래시백이란 현재 시점의 서사 흐름을 잠시 끊고 과거 장면을 삽입하여 인물의 동기나 배경을 보여주는 연출 방식입니다. 더 글로리는 이 기법을 통해 문동은이 왜 이토록 오래, 이토록 치밀하게 복수를 준비했는지를 관객 스스로 납득하도록 만듭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이 정도면 당연한 것 아닌가"로 바뀌는 순간이 바로 이 구조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물 설계도 정교합니다. 가해자 그룹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몰락하는 구조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노린 전형적인 복수극 공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카타르시스란 억압되었던 감정이 이야기를 통해 해소되는 경험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더 글로리는 가해자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문동은이 완전히 해방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복수가 끝난 뒤에도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공허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작가가 통쾌함을 의도적으로 반납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성인기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연구로도 확인됩니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우울,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의 형태로 지속될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드라마가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 글로리의 주요 인물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문동은(송혜교): 피해자이자 복수의 설계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절제된 연기로 인물의 무게를 표현
  • 박연진(임지연): 반성 없는 가해자의 전형.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한 채 몰락
  • 주여정(이도현): 문동은과 연대하는 조력자. 자신도 내면에 복수를 품고 살아온 인물
  • 강형남(염혜란): 가정폭력 피해 경험을 가진 인물로, 피해자 간 연대를 상징
  • 이사라(김히어라): 자신의 죄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괴

학교 폭력 무엇이 남는가

두 번째로 볼 때는 처음과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첫 시청 때는 복수가 어떻게 완성되는지에 집중했다면, 두 번째에는 문동은이 복수 이후에 무엇을 잃었는지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시각을 소개하는 분들도 있는데, "결국 복수는 피해자마저 소모시킨다"는 해석입니다. 저는 이 의견에 절반쯤 동의합니다. 문동은이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장면은 분명히 그 소모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이렇게도 생각했습니다. 그 소모의 과정이 없었다면 그녀가 끝까지 버텼을까 하고요. 때로는 단 하나의 목표만이 사람을 살아있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드라마를 두고 "로맨스 요소가 무게감을 희석시킨다"는 의견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도 일부 장면에서 그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주여정과 문동은의 관계가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구간에서 "이건 좀 작위적이지 않나" 싶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 관계가 결말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돕는 연대"로 이어지는 방향을 보면, 단순한 로맨스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게 됩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는 대사는 "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입니다. 고함이 아니라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전달되는 이 말이 왜 그토록 섬뜩하게 들리는지, 두 번째 시청에서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이 대사는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공포 속에 있는 사람에게 그 사실을 '인식'시키는 선언입니다. 그게 훨씬 더 잔인한 복수라는 걸 작가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콘텐츠가 사회 인식에 미치는 영향은 실제로 측정되기도 합니다. 더 글로리 공개 이후 학교폭력 관련 신고 및 상담 건수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저는 이 수치가 드라마의 사회적 기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꺼낼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한 것이니까요. 결말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열린 결말이 아쉽다"는 분들도 있고,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결말은 처음에는 허전하게 느껴지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듭니다. 완전한 해방 대신 '살아가는 선택'을 보여준 것이, 더 글로리가 복수극의 문법을 비튼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가해자가 무너지는 쾌감을 파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고 나서 한동안 "내가 누군가의 방관자였던 적은 없었나"를 돌아봤습니다. 그 불편함이 남는 드라마일수록 오래 기억된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확인했습니다. 아직 보지 않은 분이라면, 통쾌한 복수극보다는 묵직한 사회극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fullhouse1022/223932229928

반응형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