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이게 뭔 이야기지?" 싶었습니다. 평행세계, 대한제국, 만파식적... 설정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우도환 배우가 다시 보고 싶어서 정주행을 했더니, 처음과는 전혀 다른 드라마로 느껴졌습니다. 그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평행세계 설정의 의미
이 작품은 2020년 4월 SBS에서 첫 방영된 드라마입니다. 김은숙 작가의 전작 미스터 선샤인 이후 2년 만의 복귀작이었고, 이민호의 군복무 후 첫 복귀작이라는 점 때문에 방영 전부터 기대가 상당했습니다. 실제로 첫 주 시청률이 10%를 넘기며 무난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타며 결국 김은숙 작가 필모그래피 중 가장 낮은 시청률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습니다. 시청률이 곧 작품의 완성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방영 당시 이 드라마를 중도에 멈췄던 이유가 바로 복잡한 세계관 때문이었습니다. 대한제국이라는 가상의 국가와 현실의 대한민국이 공존하는 설정, 그 두 세계를 잇는 만파식적이라는 소재. 만파식적이란 신라 시대 전설 속 피리로, 이 드라마에서는 두 차원을 연결하는 문을 여닫는 열쇠로 사용됩니다. 처음에는 이 설정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다시 보니 오히려 이 드라마만이 가진 가장 독특한 강점이었습니다. 평행세계(Parallel World)라는 개념은 물리학에서 다중우주론(Many-worlds interpretation)으로 이론화된 개념입니다. 다중우주론이란 우리가 사는 우주 외에도 무수히 많은 우주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양자역학의 해석 중 하나입니다. 이 드라마는 그 개념을 로맨스 서사에 녹여냈고, "같은 얼굴로 다른 삶을 산다면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집니다. 제 경험상 이런 철학적 질문을 로맨스 장르와 결합한 국내 드라마는 흔치 않았습니다. 드라마의 핵심 설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한제국: 현실의 대한민국과 평행하는 가상의 황제 국가
- 만파식적: 두 세계를 연결하는 문을 여닫는 신비의 피리. 반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인물이 소유
- 차원의 문: 두 세계가 겹치는 특정 지점에서 열리는 통로
- 동일인(同一人): 두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는 같은 얼굴의 인물들
이 설정들이 초반 시청자들에게 진입 장벽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삼시세끼 어촌 편이 최고 12%대, 아는 형님이 15%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전했고, 부부의 세계라는 강력한 화제작과도 겹치는 불운한 편성 환경이었습니다(출처: 닐슨코리아). 하지만 넷플릭스 기준으로는 태국 등 동남아권에서 방영 기간 내내 1위를 기록하며 해외에서 다른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민호, 우도환의 1인 2역
이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우도환이었습니다. 처음 볼 때는 주인공 두 사람의 로맨스 라인을 따라가기 바빴는데, 두 번째 정주행에서는 조영과 조은섭이 훨씬 크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영화나 드라마에서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동작, 조명, 의상, 세트 등을 통해 분위기와 의미를 표현하는 연출 방식입니다. 우도환의 1인 2역 연기는 이 미장센을 가장 잘 활용한 장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대한제국 근위대장 조영이 등장할 때의 절제된 걸음걸이와 눈빛, 대한민국 사회복무요원 조은섭이 등장할 때의 능청스러운 어깨 높이와 말투. 같은 얼굴이지만 두 인물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게 제가 예상 밖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입니다. 이민호가 연기한 황제 이곤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처음에는 "황제가 왜 저렇게 직선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게 캐릭터의 설계였습니다. 황제이지만 이성과 과학을 신뢰하는 인물, 그래서 오히려 감정 앞에서는 계산 없이 솔직한 남자. 김은숙 작가 특유의 대사 리듬이 이 캐릭터에서 가장 잘 살아난다고 느꼈습니다. 캐릭터별 서사 밀도를 평가하자면,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빌런 이림의 경우 절대 악으로서의 존재감은 충분했지만, 그가 왜 그토록 권력에 집착했는지에 대한 내면 서사가 조금 더 깊었더라면 긴장감이 배가됐을 것 같습니다. 캐릭터의 서사 밀도란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납득할 수 있는 동기와 감정의 층위가 얼마나 촘촘하게 설계되었는가를 의미합니다. 이 부분이 좀 더 채워졌다면 주인공 커플의 로맨스 외에도 다른 감정선을 더 깊이 따라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고은이 연기한 정태을과 루나의 대비는 제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부분입니다. 같은 얼굴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은 환경결정론(Environmental Determinism), 즉 인간의 삶이 타고난 재능이 아닌 주어진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을 드라마적으로 풀어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무게감 있는 질문을 판타지 로맨스 장르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낸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 드라마의 해외 수출액 중 넷플릭스 플랫폼 비중이 크게 증가한 시기였으며,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이 흐름에서 국내 시청률과 해외 플랫폼 반응의 괴리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다시 더 잘 보이는 드라마
혹시 처음 봤을 때 세계관이 어렵다는 이유로 중간에 멈추신 분이 계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다시 보고 나서 느낀 것은, 이 드라마는 '빠른 소비'에 맞게 설계된 작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계관을 이해하며 따라가는 과정 자체가 이 드라마의 일부입니다. 처음에는 복잡하게 느껴지던 평행세계 설정이, 두 번째 시청에서는 퍼즐의 조각처럼 맞춰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제가 직접 두 번 봐봤는데, 이건 확실히 그런 구조의 드라마입니다.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완벽한 작품이라기보다는 큰 시도를 한 작품입니다. 흥행 성적으로만 평가하기에는 아쉬운 지점이 많은 드라마이고, 김은숙 작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야심 찬 도전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판타지 로맨스를 즐기고, 평행세계라는 설정에 열린 마음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다시 꺼내볼 만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도환 배우의 팬이라면, 이 드라마는 꼭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