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쾌한 사이다 드라마를 기대하고 봤는데, 끝나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넷플릭스 드라마 <참 교육>을 완주하고 난 뒤 한동안 다음 작품을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단순한 복수극인 줄 알았는데,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우리 사회의 어딘가를 꼭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것이 정답일지 나에게 질문을 하게 된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참 교육 주인공 능력이 아니라 명분이다
복수극의 주인공 하면 흔히 압도적인 두뇌나 무력을 먼저 떠올립니다. 실제로 흥행에 성공한 복수 드라마의 상당수는 주인공이 범접하기 어려운 능력치를 가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참 교육>을 보면서 그 공식이 조금 다르게 작동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단순히 강하거나 똑똑한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처절하게 시스템에 짓밟힌 과거를 가진, 상처받은 인간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서사적 당위성'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서사적 당위성이란 시청자가 주인공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동의하게 만드는 극적 근거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감정이 생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드라마를 보면서 느꼈던 건, 주인공이 복수를 실행하기 전에 얼마나 오래 참고 버텼는가가 카타르시스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카타르시스란 오랫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적으로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 과정을 뜻합니다. 드라마가 초반에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부조리를 길게 보여주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주인공 캐릭터가 시청자의 몰입을 이끄는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상처받은 과거와 냉철한 현재의 극적 대비
- 어설픈 자비 없이 철저하게 계획된 인과응보
- 평범한 인물로 위장하며 아군과 적군 모두를 속이는 반전 서사
솔직히 처음에는 저도 "저 정도면 그냥 속 시원하게 해결하면 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참고 또 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움직이는 방식이, 현실에서 우리가 느끼는 답답함과 정확히 겹쳐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결국에는 참는 자가 이기는 것일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빌런: 악당이 무서운 이유 낯설어서가 아니라 익숙
악역들을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이 빌런들이 너무 과장된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시청하면 할수록 그 반대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속 빌런들은 대부분 사회적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입니다. 이들이 시청자의 분노를 효과적으로 끌어올리는 이유는 단순히 잔인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대표되는 현실적인 불공정을 그대로 구현하기 때문입니다. 유전무죄란 돈과 권력이 있으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고, 없으면 죄가 없어도 벌을 받게 되는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가리킵니다. 저는 보다가 여러 번 리모컨을 내려놓을 뻔했습니다. 빌런이 권력 앞에서 한없이 비굴해지다가도 약자 앞에서는 돌변하는 장면들이 너무 현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뉴스에서 학교 폭력이나 교권 침해 사건 기사를 읽을 때 드는 그 씁쓸함과 정확히 같은 감정이었습니다. 역시 가진 자들의 특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의 잘 못된 판단으로 가진 자들의 자식들은 모두 가는 아닐 수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었던 거 같습니다. 국내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피해 건수는 2023년 기준 초중고를 합산해 연간 수만 건에 달하며, 특히 피해 학생의 상당수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드라마 속 빌런들이 활개 치는 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는 장면들이,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흥행하는 복수극에서 빌런의 몰락은 대개 세 단계를 거칩니다. 권력을 믿고 오만하게 행동하다가, 주인공의 함정에 빠져 기반을 잃고, 마지막에는 주변의 배신으로 고립되는 구조입니다. <참 교육>도 이 패턴을 따르지만, 제가 느끼기엔 그 과정에서 단순한 응징보다 '왜 이런 인물이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을 더 오래 붙잡고 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조력자: 팀플레이가 진짜 교육이라는 것을 보여주다
복수극에서 조력자는 흔히 극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감초 역할 정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 교육>의 조력자들은 조금 다르게 기능합니다. 이들은 정보를 물어다 주거나 위기를 돌파하는 것을 넘어, 주인공이 혼자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사람 사이의 연대'를 만들어 냅니다. 조력자 유형은 대체로 해커, 변호사, 전직 형사처럼 전문 기술을 가진 인물들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캐릭터 시너지'라는 개념이 작동합니다. 캐릭터 시너지란 각자 다른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협력할 때 개인의 역량을 합산한 것 이상의 효과를 내는 극적 구조를 말합니다. 주인공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주의 서사보다 집단 협력 서사가 시청자에게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많은 분들이 복수극의 재미를 주인공 혼자 통쾌하게 해결하는 데서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보다 보면 조력자들이 엮여 들어가는 순간 이야기가 훨씬 입체적으로 살아납니다. 누군가를 혼자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드라마가 말하는 진짜 '참 교육'의 의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디어 속 교육 서사가 시청자의 사회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는 서사 구조는 개인 영웅 서사보다 시청자의 공감 지속 시간을 높이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참 교육>이 단순한 통쾌함 이상의 여운을 남기는 것도 이 조력자들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품을 다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특정 장면의 카타르시스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조력자가 되고 있는가"라는 조용한 질문이었습니다. <참 교육>은 등장인물 분석을 통해 결국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신 분들이라면 드라마를 다시 한번 조력자들의 시선으로 보시길 권합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