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엔 그냥 시청률 잘 나온다는 소문만 듣고 틀었습니다. 그런데 첫 회를 보고 나서 바로 원작 웹툰을 찾아봤습니다. 138화, 단행본 10권짜리를 주말 내내 읽었고, 그제야 이 작품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흔들어놓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드라마와 웹툰 사이에서 뭘 잃고 뭘 얻었는지, 제가 직접 비교해 본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웹툰과 드라마의 비교
혹시 이런 궁금증 가져보신 적 없습니까? 원작이 있는 드라마를 볼 때, "이건 웹툰이랑 다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쩐지 드라마 쪽이 더 몰입되는 경험 말입니다. 저는 정년이를 보면서 정확히 그 감각을 느꼈습니다. 원작 웹툰 이 작품은 1956년, 6.25 전쟁 정전 협정 체결 3년 후를 배경으로 합니다. 여기서 배경이 단순한 시대 설정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 시기는 여성국극(女性國劇)이 대중문화의 정점에 있던 때입니다. 여성국극이란 모든 배역을 여성 배우가 맡아 연기하는 한국 고유의 공연 예술 형식으로,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창극에서 파생된 장르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사회에서 사람들이 왜 공연장으로 몰려든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공 윤정년은 목포 출신의 소녀로, 애초에 꿈이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냥 소리로 부자가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매란국극단에 연구생으로 들어간 것도 순수한 예술적 열망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목표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처음부터 외치는 주인공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웹툰에서 주인공이 겪는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크게 세 번의 위기와 전환점이 있습니다.
- 연구생 공연 방자전에서 뜻밖의 주목을 받지만, 팀을 고려하지 않는 연기로 지적을 받는 장면
- 매란국극단에서 쫓겨난 뒤 방송국을 거쳐 다시 복귀하는 과정
- 본공연 자명고 오디션에서 군졸 1로 출발해 결국 주인공 자리까지 올라가는 흐름
이 과정에서 드라마 버전이 웹툰과 가장 크게 갈리는 지점은 권부용이라는 캐릭터의 삭제입니다. 부용이는 원작에서 퀴어(queer) 서사를 담당하는 인물입니다. 퀴어 서사란 이성애 중심의 규범에서 벗어난 정체성과 감정을 다루는 이야기 구조를 뜻합니다. 지상파 드라마라는 매체의 특성상 이 캐릭터가 통째로 삭제된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지만, 원작 팬들이 아쉬워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래도 제작진 측에서는 부용이가 가진 감정의 결을 다른 캐릭터들에 분산시켜 녹여냈다고 밝혔으니, 드라마 속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덧붙이자면, 원작에서 캐릭터들을 만들 때 실존 배우들의 이미지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윤정년은 영화 아가씨에서의 김태리, 허영서는 안소희, 홍주란은 아이유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드라마 캐스팅이 원작 팬들 사이에서 별다른 반발 없이 받아들여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성 국극이라는 배경이
이 드라마를 단순한 성장 드라마로만 보시진 않았습니다. 저는 처음엔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여성국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여성국극은 1940~50년대 한국 공연 예술계의 중심이었습니다. 특히 임춘앵, 박록주 같은 명창들이 이끈 여성국극단은 당시 아이돌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습니다. 국악계에서 사용되는 발성 기법인 통성(通聲)이란 배에서부터 끌어올리는 복식호흡을 바탕으로 한 강한 공명 발성 방식을 말합니다. 드라마에서 발성 연습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통성 훈련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건, 배우들이 단순히 연기만 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김태리와 신예은은 실제로 판소리와 국극 발성을 직접 훈련했고, 그 노력이 화면 밖으로도 전달됐습니다. 국악 장르에서 자주 언급되는 또 다른 개념이 시김새입니다. 시김새란 판소리와 민요에서 음과 음 사이를 잇는 장식음, 즉 꾸밈음 처리 방식을 가리킵니다. 단순히 음정을 정확히 내는 것과 달리, 소리에 감정과 호흡을 실어 나르는 기술입니다. 드라마에서 정년이가 같은 대사를 반복하면서도 매번 다른 감정을 실어내는 장면들이 바로 이 시김새의 원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여성국극의 전성기가 왜 짧았는지도 생각해 볼 만한 지점입니다. 1960년대 이후 TV가 보급되면서 공연 예술 전반이 급격히 쇠락했고, 여성국극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국립국악원에 따르면 한때 수십 개에 달하던 여성국극단이 1970년대에 이르러 거의 자취를 감췄다고 합니다(출처: 국립국악원). 드라마가 그 찬란했던 시절을 재현하는 데 공을 들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잊혀 가는 역사를 붙잡아두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단순한 오락물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며 한 가지 아쉬움도 느꼈습니다. 여성을 쇠퇴했는지, 그 사회적 맥락을 드라마 안에서 좀 더 정면으로 다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12부작이라는 분량 제한이 아쉬운 건 이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여성국극을 대중에게 다시 소개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드라마 방영 이후 여성국극 관련 검색량이 급증했다는 점도 이를 증명합니다(출처: 네이버 데이터랩). 웹툰 원작의 결말에서 정년이는 결국 허영서와 투톱 체제를 이루며 여성국극의 제2전성기를 이끄는 인물로 성장합니다.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부족하고, 팀 안에서의 조화와 타인에 대한 이해가 더해질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성장 서사(bildungsroman)란 주인공이 내적 성숙과 정체성 확립을 이루어가는 이야기 구조를 뜻합니다. 이 드라마는 그 전통적인 성장 서사의 틀 안에서 한국 고유의 예술적 맥락을 정교하게 녹여낸 작품입니다. 드라마가 원작의 어떤 부분을 살리고 어떤 부분을 버렸는지 직접 비교해 보면, 단순히 줄거리를 추적하는 것 이상의 재미가 있습니다. 원작을 먼저 읽고 드라마를 보는 것도, 드라마를 먼저 보고 원작을 찾아가는 것도 모두 다른 방식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직 두 가지 중 하나만 접하셨다면, 나머지 한쪽도 꼭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정년이라는 이름 석 자가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