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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메이커 (정치드라마, 여성서사)

by 드라마 방구석 2026.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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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사람이 이기려면 반드시 더러워져야 할까요? 퀸메이커를 다 보고 난 뒤 저는 그 질문을 한참 붙들고 있었습니다. 정치 드라마라고 하면 대개 남성 중심의 권력 다툼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여성이 권력의 중심을 끌고 갑니다. 그 구조 자체가 이미 제게는 낯설고 반가웠습니다. 전 이 드라마를 보고 예전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나 현제도 세계를 만들고 다스린다고 하는 남성들 옆에서는 늘 여자들이 뒤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는 책에서 본 글귀에는 그 남자를 다스리는 사람을 여자들이다. 전 이 드라마를 보면서 더욱 느꼈습니다. 

 

퀸메이커의 두 여자 주인공이 등지고 서 있는 사진
퀸메이커의 두 여자 주인공이 등지고 서 있는 사진

황도희와 오경숙 정치드라마

일반적으로 정치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처음부터 도덕적 우위를 점하거나, 반대로 처음부터 악당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퀸메이커를 보면서 경험한 건 그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황도희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덕적으로 깔끔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10년간 재벌 오너 일가의 스캔들을 은폐해 온 기업 해결사이고, 그 과정에서 죄 없는 사람을 희생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선택들이 설득력을 가집니다. 여기서 '기업 해결사'란 기업 내부의 불미스러운 사건이나 스캔들을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을 말합니다. 영미권에서는 '픽서(Fixer)'라는 용어로도 불리며, 법적·윤리적 경계선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직업군입니다. 김희애가 연기한 황도희는 바로 이 픽서의 전형으로, 드라마 초반에는 시청자로 하여금 '이 사람이 주인공이 맞나?' 싶은 불편함을 주기도 합니다. 반면 오경숙은 전형적인 인권 변호사의 서사를 가진 인물입니다. 여기서 인권 변호사란 노동권, 성평등권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대변하는 전문직을 의미하며, 드라마 속 오경숙은 은성그룹에 부당 해고된 여성 직원 500명을 위해 옥상 농성까지 불사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처음에 저는 이 두 캐릭터가 나란히 설 수 있는 조합인지 의심했습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두 사람은 서로를 닮아갑니다. 오 경숙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점점 현실적인 전략을 수용하고, 황도희는 자신이 외면해 왔던 죄책감과 마주합니다. 이 교차점에서 드라마는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저는 그 지점을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가 교차하는 순간이라고 봤습니다. 캐릭터 아크란 이야기 안에서 인물이 경험을 통해 내적으로 변화하는 궤적을 뜻하는데, 이 드라마에서 두 주인공의 아크는 반대 방향으로 출발해 결국 같은 지점으로 수렴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거창한 연설이나 역전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던 날, 오경숙이 황도희에게 아무렇지 않게 건넨 "밥 사줄게"라는 한마디였습니다. 수십 가지 전략과 계산이 오가는 드라마 속에서 그 장면만큼은 진짜 사람 냄새가 났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보며 누군가가 힘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서사의 현실성 정치

퀸메이커가 그려내는 선거 전략의 핵심은 네거티브 캠페인(Negative Campaign)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네거티브 캠페인이란 상대 후보의 약점이나 비리를 공격하여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선거 전술을 말합니다. 실제 정치 현장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방식으로, 국내 선거에서도 후보 이미지 네거티브 전략이 유권자 결정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있습니다(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치밀한 전략이 흥미롭게 느껴졌는데,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이 구조가 반복되기 시작합니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고, 이미지를 무너뜨리고, 다시 반격이 오는 사이클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긴장감보다 피로감이 먼저 왔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드라마로서의 완성도를 조금 깎아내린 요소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여성 정치인이 직면하는 이중 잣대를 정면으로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오경숙의 아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비판은 아들이 아닌 엄마이자 후보인 오경숙에게 돌아옵니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여성 후보는 남성 후보에 비해 가정과 직업 역할 양립 여부를 기준으로 더 가혹하게 평가받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여성정치연구소). 드라마가 그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저는 이 작품이 단순한 오락물 이상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퀸메이커가 보여주는 여성 캐릭터들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감정이 아닌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여성 주인공
  • 가정과 직업 사이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적 인물
  • 서로 경쟁하지 않고 연대하는 두 여성의 관계
  •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싸우는 캐릭터 서사

제 경험상 한국 드라마에서 이 네 가지를 동시에 갖춘 여성 캐릭터는 드뭅니다. 그래서 완성도의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끝까지 놓지 못했습니다. 류수영이 연기한 재민은 전형적인 악역처럼 보이면서도 그 안에 연약함을 가진 인물로 표현됩니다. 아버지를 잃은 과거, 그리고 자신을 조종해 온 세력의 실체를 마주하는 장면에서 저는 의외로 그 인물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악인도 단순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의 인물 설계에서 남다른 점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감옥에 있는 황도희를 찾아온 낯선 인물의 질문은 단순한 열린 결말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의 문을 여는 장치로 읽혔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깨끗한 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벽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하지만 완벽에 가까운 연기로 버텨낸 드라마입니다. 중반부의 피로감을 감수하더라도 두 배우의 연기가 이야기를 끝까지 이끌어 줍니다. 정치 드라마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제대로 쓰인 여성 서사를 찾고 있다면 한 번쯤 끝까지 봐도 후회하지 않을 작품입니다. 가끔은 여자의 위대함을 또 한 번 느끼는 드라마였습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adb1990/22307542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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